카가미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온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의 아버지나 히무로와 아주 짧은 몇 마디 한 걸 빼고는 일본어를 쓸 일이 없었던 카가미는 갑자기 들려오는 수많은 일본어가 너무나 낯설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들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고, 고민 끝에 입을 열면 자신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와서 결국엔 어눌하게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곤 했다.
언어소통의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괜찮아져 갔지만,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아, 자신의 한마디가 의도하지 않게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곤 하자 카가미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카가미는 점점 낯을 가리게 되었고 끝내는 같은 반 동급생들까지 어렵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인 듯 초반엔 어느 정도 말을 걸어왔던 이들도 힐끗 눈길만 줄 뿐 아무도 카가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친구 없이 혼자 헛도는 상황이 카가미를 우울하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이랬지. 하지만 그때 타츠야를 만나서 농구를...'
카가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살짝 감싸 쥐었다가 책상에 엎드렸다. 친구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카가미는 미국에서처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농구로 어필하고싶었다. 그래서 맨 처음 이곳에 전학 오게 된 날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왓! 너 진짜 키 크네! 미국에서 왔다고? 본고장이라니 끝내준다!"
자신은 부 활동으로 농구부를 하고 있다며 혹시 괜찮다면 농구부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같은 반 친구의 제안. 그렇게 카가미는 일본에서 농구를 다시 시작했다. 자신이 덩크를 하는 모습에 다들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모습들에 당황한 카가미가
"덩크,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라고 묻자 농구부 팀원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보통의 중학생은 못하는 게 당연해-" 라고 대답했다.
자신보다 강한 이가 없었다는 건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카가미는 그래도 즐거웠다. 농구화를 신고, 코트에서 땀을 흘리며 손에 닿는 볼의 감촉을 즐기는 일은 정말, 너무나.
하지만 이런 카가미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눈길이 차가워져 가고 있었다.
어느 날처럼 팀을 나눠 연습시합을 하던 카가미는 의욕 없는 팀원들의 모습을 참다못해 결국 화를 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야? 왜 그렇게 의욕,없는 얼굴을 하고 있냐고!"
화난 카가미의 모습에도 팀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으로 툭 내뱉듯 말했다.
"어차피 카가미가 있는 팀이 이길 텐데 열심히 할 필요 없잖아."
"본고장에서 배운 사람이랑 우리랑 비교가 돼?"
"야 집에 가자!"
카가미는 그날 농구부를 나와버렸다. 농구는 카가미에게 그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었다. 약하거나 강하거나 상관없이 농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들과는 더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에쥐자 느껴지는 서늘한 금속의 느낌에 카가미는 움찔하며 손을 내렸다. 매번 땀과 뜨거운 체온으로 달궈져있던 목걸이는 이제 차갑기만 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카가미가 책상에 볼을 대고 눈을 꼭 감아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카가미는 추위를 타는 아이처럼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