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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헨리멜빈] 기록



[헨리멜빈&멜빈헨리] 기록

  
 꾸부정한 자세를 하고 앉아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는 아직 소년티를 채 벗지 못한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까치집이 된 머리와 눈가의 거무죽죽한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모습은 며칠 밤을 새운 티가 역력했다.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그의 손은 멈추지 않고 바삐 움직였다. 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바쁘게 적는 소리만 방안을 채울 정도의 고요함은 곧 쾅- 하는 큰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깨어졌다.
 

"멜빈! 수리해줘!"

갑작스러운 환한 빛에 눈을 비비던 남자, 멜빈은 스피커와 마이크를 품에 끌어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머리의 소녀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는 더듬거리며 하얀 머그잔을 찾아 손에 쥐고 안에 담겨있던 다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였다. 양팔에 한 아름 안고있는 모습을 보니 큰소리가 나며 문이 열린 건 분명 소녀가 문을 부술 기세로 발로 찬것이 분명했다.


"리첼.."
"언니랑 캐럴이랑 약속이 있어서 얼른 가봐야 돼, 여기 두고 간다!"

간만의 쇼핑이다! 야호~ 환호성을 내지르며 빠르게 사라지는 보랏빛에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던 멜빈은 자신의 발치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제피들에게 손짓했다.

"수리."

[제피L, 손상도 체크- 정보 전달합니다.]
[제피R, 작업 시작.]

 
제피들이 바삐 움직이는 걸 지켜보던 멜빈은 펜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쓰러지듯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연구 도중 방해를 받아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지금 같은 때에는 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나마 침대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럴 때마다 팔짱을 끼고 잔소리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고 부스스 눈을 떠서 고개를 들곤 했었다.

'멜빈, 그러지 말고 침대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라니까? 아무튼, 게으름뱅이'


"헨리.."


[제피L. 남겨진 기록 '헨리' 재생합니다.]

'나 이번엔 좀 긴 여행을 다녀올 거야. 배웅해주지 않을래 멜빈?'
'제피.. 배웅.'
'내가 옐로우 키트(제피L)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야. 좀 섭섭한걸.'
'...'

 
시간여행 자체로도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이건만 자신의 할아버지 아돌프 박사와 관련된 일을 하러 간다는 헨리의 말에 멜빈은 평소보다 더 헨리에게 무심한 척 굴었다.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멜빈은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떠나는 헨리의 발걸음 소리를 애써 외면했었다.

  
'난 이번 일을 끝으로 시간 여행하는 일을 그만 둘거야,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네 주인이 날 은근 걱정하거든. 다음에 보자, 옐로우 키드.'
 
'그리고, 멜빈.'
 

영상은 헨리 환하게 웃는 모습을 끝으로 멈췄다. 멜빈은 고개를 들어 영상 속의 헨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위로 끌어올렸다. 헨리의 미소를 따라 해 보려고 했지만 이내 다시 아래로 축 처지는 입꼬리가 애석하다. 

"...헨리"

  
[제피, 슬픔과 그리움의 인사.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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